위 오른쪽 형상은 1층 상점 홀의 천장면입니다.옛 주거용 가옥은 오늘날의 구조물에 비해 티타늄징크시공 층고가 대단히 낮았으며, 이 집 또한 공사전에는 층마다 샅샅이 천장 구조부 아래 반자틀과 반자를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위 오른쪽 형상은 1층 상점 홀의 천장면입니다.
옛 주거용 가옥은 오늘날의 구조물에 비해 티타늄징크시공 층고가 대단히 낮았으며, 이 집 또한 공사전에는 층마다 샅샅이 천장 구조부 아래 반자틀과 반자를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덧댄 반자는 샅샅이 철거하였고, 천장면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도배지, 신문지 따위의 초배지도 깨끗이 걷어낸후 샌딩으로 면을 다듬어 목재 고유의 결을 보존하여 되살아나도록 하였습니다.
사용상의 편의와는 부분 배치되기는 하나, 이 가옥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핵심요소는 마감을 전혀하지 않고 옛 풍채를 그대로 수입기와시공견적 두기도 하였습니다.
위 형상 아래 두개가 그곳입니다.
왼편 그림은 3층 다락방으로, 목구조에 흙벽인 이 가옥의 근본 벽체구조는 물론, 서까래와 널로 이루어진 지붕틀 하지도 한눈에 들어오는 훌륭한 관찰점 V 그 오른쪽 형상 과연 2층방 천장의 한 부분을 막지 않고 구조부가 드러나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곳입니다.
좁게 쪼갠 대나무를 가로 세로 새끼로 엮은 틀에 황토흙을 이겨바른 일본식 흙벽의 맵시를 손수 볼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당연히 인생에 성가심이 없도록 꼭 소요한 각종 설비는 샅샅이 에스파냐기와 구비하였습니다.
급배수 설비와 화장실, 전기및 음신 설비, 냉난방 설비가 도입이 되었고, 잠재하는 설비배관은 벽체와 끝으로 매립하여 노출을 최소화시켰다.
둘째는 구조물의 안전확보다.
목재 규모의 주요부재들은 거의 조건이 양호하였으나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전진되었을 균열과 뒤틀림은 피할수 없었습니다.
본채의 경위 가옥 전체가 동쪽으로 기울어져있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될 정도였으며, 본래는 중간기둥이 전혀없이 구안되었던 1층 홀에도 보완 기둥을 세워야 하는 전경이었습니다 하여, 본격적인 내장공사에 출시하기 전, 구조보강공사를 선행하였습니다.
왼편 위 형상은 1층 홀 덧댄 기둥을 강철기둥으로 교대하는 테릴기와 형상입니다.
오른쪽 위는 동쪽으로 기운 벽체를 보완하기 위해 구조물 좌우 옆면부 전체에 각관 구조틀을 시공하고 있는 국면입니다.
규모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기운 벽체를 되살리기가 어려워 고안한 방안이었습니다.
부분적인 기둥 보완도 소요하였습니다.
왼편 아래쪽 형상은 강철플레이트를 자로 절곡한후 보와 기둥을 각각 감싼 나중 직각을 유지하도록 삼각형 맵시로 재단한 평철을 용접하여 훼손정도가 심한 천장 보를 보완한 형상입니다.
이 보완 철구조는 목재로 감싸거나 하지 않고 유성도장으로만 끝맺음하였습니다.
집이 나이를 먹어 소요한 곳을 수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집의 역사이므로, 일부러 평판기와 그 부위를 감출 소요가 없습니다는 생각이었고 건축주도 이러한 시각에 선선히 찬성해주셨기 탓입니다.
끝 보완도 소요했습니다.
당초 주거용도로 사용되었던 2,3층에는 두께 50 위 형상은 별채 안쪽 벽 마감재를 철거한 형상입니다.
6 세째, 공사비용의 한도내에서 시공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문화재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물을 복구하는 공공성을 띤 작업이었습니다.
한편 관공서가 아닌 개인이 장본인의 상업적 용도로 리모델링을 하는 작업이기도했습니다.
리모델링의 첫번째 규격인 입면은 극도한 원형그대로 복구합니다.를 말그대로 극도한 실행하려고 할때 바로 부닥치는 논의가 돈입니다.
이미 선정되어있는 문화재를 중앙, 지방정부의 테자보자기와 재정지원으로 복구하는 작업이 아닌 것입니다.
지붕재를 선정하는 진행에서 그런 연구를 겪었습니다.
100년전에 사용된 일식평기와와 흡사한 자재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점토를 구워만든 전통기와를 시공하려면 지붕에 흙과 단열재료를 깔아야 하는데,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지붕의 하중또한 무시할수 없어 맵시가비슷하지만 무게는 한결 가뿐한 금속재료 기와를 찾기로했습니다.
기와 시공업체 5~6곳과 교섭하여 견적서와 카탈로그, 샘플을 받아보고 대조하는 짜증스러운 작업을 거쳐야했습니다.
징크판넬, 칼라강판기와, 한식동기와, 플라스틱 기와를 샅샅이 검사하였고, 결말 아래 형상과 같이 금속기와를 최종 선정하여 시공하였습니다.
이 금속기와는 알미늄 아연도 강판위에 스페니쉬기와시공가격 방위피막과 스톤칩을 코팅한 자재로, 시공후 생김새나 색상이 일식기와와 유사합니다.
전통기와에 비할수 없을 만치 가볍고 시공성이 우수하며 공사비용도 절대적으로 저렴합니다는 점 또한 간과할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최상의 선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고증시 일본인 근대건축 숙련가를 입회시켜 자재를 선정하고, 소요한 자재와 시공기술자를 일본에서 소득했더라면 복구의 완성도가 한결 높았을 것입니다.
다만 가격걱정은 제쳐두고 원형을 살려내는 데에 만 촛점을 맞추는 작업이 아니었으므로, 차로를 택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구조물의 내력은 프로젝트를 대비하고 디자인하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최초 건립시점이 1930년대일거라 스페니쉬기와시공가격 추산했는데, 문헌조사를 연결해 그로 부터 4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1890년대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1880년대~1890년대에 찍은 것으로 추측되는 일본영사관 앞 도로 형상인데, 이미 이 형상속에 히로이케 데시로 가옥이 포함되어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말 일본에서 한창 짓고 있던 건축양식은 마찌야 다.
현대 한국어로 옮기면 도회지형 상가주택 쯤 됩니다.
조선 개항후 일본인조계로 들어온 초기 일본 이주민들 또한 이 마치야 양식으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마치야는 거의 2층 규모를 가지며 1층은 점포와 접객공간으로, 2층은 점포주 식구들이 사용하는 내실로 거의 사용되었습니다.
도회지 이탈리아기와 인구가 격증하여 구조물의 사용효율을 높이려는 강박이 심해진 19세기 말 이후부터는 3층으로도 지어졌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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