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의 평면구조는 아래 왼편 그림과 같습니다.대로에 면한 1층 전면부에 상점 가 있어 몇가지 작업을 평판기와 하는 자리로 사용했습니다.오른쪽 평면도는 철거 전에 실측한 히로이케 데시로 가옥의 평면구조다.

1층의 평면구조는 아래 왼편 그림과 같습니다.
대로에 면한 1층 전면부에 상점 가 있어 몇가지 작업을 평판기와 하는 자리로 사용했습니다.
오른쪽 평면도는 철거 전에 실측한 히로이케 데시로 가옥의 평면구조다.
본채 끝부분에 장소한 방과 부엌은 후에 끝 난방과 벽체 보완을 하며 구획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안뜰 위쪽 구석에 있는 온실도 목구조인 본 구조물과는 다르게 조적조인 것으로 보아, 한참 후에 소요에 의해 지어졌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고전적인 마찌야의 규모를 S형기와 인도하고 위치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 구한말~일제 강점기 인천 중구 도로 형상을 고려하고 자료를 검사하며, 최초 디자인이 상당부분 보완되는 진행을 거쳐야했습니다.
뒷날 그림을 보자. 위 그림은 맨 최초 디자인했던 입면 컷입니다.
공사 전 이 집 2층 창가에는 그림 처럼 테라스가 있었습니다.있던 테라스는 살려두었고 법칙이었습니다.
몇달 동안 고증과 보완을 거쳐 아래 그림으로 입면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19세기말에 건립된 마찌야의 전형을 따르는 건축물이므로, 최초 건립시에는 테라스가 없었을 것으로 추측하였습니다.
테라스를 없애고 눈썹지붕을 코버트기와 올렸다.
도로에 면한 1층 창호에는 일본식 가옥의 전통을 따라 외부격자창을 달았습니다.
출입문의 개폐방식에 대해서는 자유조방 여닫이문이 그때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은행이나 파출소 처럼 대규모 관공서 구조물에 한해 쓰였습니다는 손가락질에 따라 2폭 미서기문으로 최종 개정하게 되었습니다.
마찌야구조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인가옥의 복원사례를 찾아 디테일한 시공계획을 세우는데 반영하기도하였습니다.
위 형상은 군산 소재 히로쓰가옥 외벽의 비늘판벽 누름대 시공모습입니다.
비늘판벽은 베벨사이딩 b 완전히 된 고증없이 모양만 비슷하게 만들어 놓으면 참 어설퍼 보인다는 수입기와시공가격 것을, 인근 동국사 앞길 벽에서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아래 형상을 위 형상과 대조 해보면 위에서 얘기한 두가지 중대한 특색이 차이가 난다.
사이딩재의 폭은 좁고, 누름대는 내측면을 모양대로 깎지 않고 그저 대서 붙였습니다.
이와 같이 흥미롭지만 혼잡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 고증단계를 거쳐 오늘 비로소 시공에 돌입할수 있었습니다.
시공전 현장 인정을 합니다가 혹은 철거를 하며 여러곳에서 이 집의 오랜 내력을 알려주는 근거들이 나왔다.
일찍 흙벽 아래 형상과 같이 나무 기둥과 평판기와 기둥사이 벽체는 흙벽입니다.
짚끈으로 엮은 대나무살을 좌우 기둥에 단단히 고정한 뒷날 찰흙을 이겨 판판하게 채운다음, 5 그런데, 최초 시공한 흰색 회벽은 시간이 흐르며 오염되었을 것입니다.
벽지를 발라 흙이나 회칠이 부서지는 것을 보완하는 인테리어를 자꾸 거듭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 형상은 2층 중간방 정면 벽체 철거중에 찍은 것입니다.
회벽위에 페인트 도색을 하였고, 그 위에 초배지로 신문을 바른 뒷날 또다시 도배지를 정배로 발라 붙였습니다.
방에 따라서는 초배지로 신문 대신 장부책 종이를 모니어기와 쓴 곳도 있었습니다.
이 집이 야마토쿠미 인천항을 들고 나는 화물을 운송하는 하역사무소였습니다는 점을 상기할 소요가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쌓인, 보관할 소요성이 더이상 없어진 낡은 장부책이 줄기차게 생겨났을 터입니다.
네댓겹 들러붙어있는 초배지 정배지 꺼풀을 순백하게 떼어내보니, 본래의 회벽이 훌륭한 조건으로 보존되어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 형상은 3층 벽면으로, 짖궂은 낙서가 그려져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삿갓을 등에 매고 장삼을 걸쳐입은 승려의 뒷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보존가치는 알수없으나 이 집의 역사성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부분이라 티타늄징크시공 벽을 허물거나 덮어버리지 않고 유리로 보존하였습니다.
벽면 철거가 전진될 수록 여러곳에서 낙서가 나타났습니다.
신문지와 낡은 장부종이가 어지럽게 붙어있는 것을 떼어낸 아래 회벽면에는 상투를 튼 손코의 남정네 그림이 그려져있습니다.
공사 전 2층 계단 앞 첫번째 방 벽면입니다.
일본인 거주시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짚다다미도 남아있었습니다.
유지관리가 쉽지 않아 요즘엔 일본에서도 짚다다미를 잘 쓰지 않습니다고합니다.
아래 형상은 3층 천장면을 올려다 본 형상입니다.
마찌야의 전통적인 천정 마감방식인,아지로덴죠. 다.
갈대나 노송나무를 앏게 찢어 엮어만든 것입니다.
이 또한 기와지붕시공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를 보여주는 증명에 해당합니다.
안타깝게도 지붕공사시에 서로 철거되었습니다.
100년이 넘은 시간동안 머금은 습기와 계속된 부식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뒷날 형상은 뒤채 방바닥 철거장면입니다.
눈앞에 많이 쌓아놓은 돌더미는 방구들입니다.
열전도성이 좋아 온돌방 구들재료로 으뜸으로 쳤다는 점판암이었습니다.
매우 오래전에 한국식 온돌방 공사를 해서 사용해온 모습인 것입니다.
이 돌은 안뜰 디딤돌과 화분받침대로 재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집이 어떤 집인지를 손수 드러내주는 모습들도 영속 발견되었습니다.
2층 나무 벽체에 야마토쿠미 가 선명하게 적혀있습니다.
팟알에 게재된 이 집의 연표를 보면 야마토쿠미는 오사카상선의 화물을 취급하는 하역업무를 했습니다고합니다.
좌우측 외벽 보완 공사를 위해 2층 교육실 동쪽 내벽면을 뜯어내던 중 아래 형상과 동일한 홍보물이 나왔다.에 출항하던 지점망을 통지하는 포스터다.
짐짓 이 집이 암만 짧게 잡아도 111년 이상되었습니다는 증거물입니다.
요즈음 건축공사를 완성하면 머릿돌을 세워 시공자와 설계자의 존함을 써놓듯, 왕년 목조건물을 짓던 시절엔 대들보에 대목수의 존함을 써놓았습니다고합니다.
이 집에도 있었습니다.
베벨 사이딩 외벽마감 일본 목조주택의 고전적인 외벽 스페니쉬기와시공 마감방식인 비늘판벽 최종마감은 도토리색 아쿠아스테인을 2회 스프레이 도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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